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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S SOUL

서울 라이브

네 곳의 라이브 클럽을 방문해 네 가지 공연을 관람했다. 주인장들과 그 공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서울의 라이브 클럽이 어떤 역사와 형태를 가졌는지 새삼 되짚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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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지 프룻

2018.09.08 21:00 <THE LAST DAY> 위댄스 & 멋진인생 

박지홍 대표
위댄스와 멋진인생의 합동 공연은 어떻게 기획하게 된 것이며, 표제인 ‘The Last Day’의 의미는 뭔가? 둘 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밴드다. 위댄스는 멤버 각자의 개성이 아주 매력적인 밴드라 첫눈에 빠져들었고, 결국 몇 년 전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 공연할 때도 함께 갔다. 멋진인생 역시 이름만큼이나 멋진 밴드라 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매달 기획공연을 하자고 내가 먼저 제의했다. 그리고 두 팀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소개해준 것이 자연스럽게 공연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공연 제목은 멋진인생이 정한 거라 잘 모르겠다. 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닐 거다.

개인적으로도 아주 즐거운 공연이었다. 두 팀 모두 음악적인 완성도가 있되 ‘그럴싸함’을 신경 쓰지 않는 뮤지션인 듯해서. 뮤지션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을까?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스트레인지 프룻(이하 프룻)은 장소도 협소하고 시설이나 장비도 본격적인 공연장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냥 근처에 사는 뮤지션들의 ‘사랑방’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사실 내가 공연 팀을 선정한다기보다는 자주 들락거리는 뮤지션, 레이블을 운영하는 친구들이 기획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연 중에 위댄스의 위보 씨가 말했다. “스트레인지 프룻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여기 우리가 모여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요.” 몇 해 전 스트레인지 프룻 10주년 기념 공연에는 40팀이 넘는 뮤지션이 자진해서 참여하기도 했다. 스트레인지 프룻이 이토록 뮤지션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글쎄. 그건 뮤지션들에게 물어야 알 수 있지 않을까. 프룻이 뮤지션들의 사랑을 받는다기보다는, 자주 보는 친구가 많다 보니 친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스트레인지 프룻은 처음에는 술집이었다가, 단골이던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브 클럽이 되었다고 들었다. 얼핏 수동적으로 들리지만, 애초에 설비를 갖추지 않고 시작한 공간이 라이브 클럽으로 변모했으며 10년의 세월을 지킨 건 오너의 능동성 없이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수동적인 게 맞다. 2005년에 가게를 열었는데, 첫 라이브는 2007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주 들락거리던 트램폴린 차효선이 이곳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싶다며 건반과 마이크, 노트북을 가져왔는데, 가게에 있는 오디오용 앰프랑 스피커를 이용하니 생각보다 그럴싸한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그녀가 다시 기획해온 것이 본격적인 첫 공연이었다. 트램폴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야마가타트윅스터의 공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친구들이 안 쓰는 악기들을 가져다 놓고 필요한 몇 가지는 사기도 하며 공연을 시작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유지해준 건 단골 뮤지션들이었던 셈이다.

인디 뮤지션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도 다루고 있다. 어떤 맥락일까? 이번 달에만 20팀 넘는 해외 뮤지션이 공연했고 또 할 예정이다. 해외 뮤지션에게서 연락이 오면 가급적 공연이 성사되도록 하는 편이다. 일단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고, 국내 뮤지션과 교류하면서 서로 자극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비슷한 느낌의 동네 단골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하는 걸 권하는데, 그들도 로컬 밴드와 공연하는 걸 반긴다.

스트레인지 프룻에서 다루고 싶은 기획, 초청하고 싶은 뮤지션도 있을까? 허황된 거라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가 작년에 오랜만에 앨범을 내고 투어를 시작한다기에 공연 섭외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좀 더 허황된 거라면 10주년 공연 준비할 때 친구들과 농담으로 닐 영에게 간곡한 편지를 써보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올지도 몰라’ 하며 즐거워했다.

초창기에는 네 명의 동업자와 함께였는데 지금은 혼자 운영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더 놀라웠던 건 박지홍 대표가 지금까지도 ‘본업’을 따로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이런 운영이 가능할까?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을까? 프룻은 요일별로 담당하는 스태프가 따로 있다. 대개 서로 친구이며 뮤지션들이라 가게 운영 및 공연 진행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가게가 오래되다 보니 지금껏 일한 스태프가 100명이 넘는데, 스태프를 그만두고 나서도 자주 놀러 오고 행사가 있을 때 자발적으로 돕기도 한다.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프룻이 이렇게 유지되어온 건 순전히 이 친구들 덕분이다. 지금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종종 좋은 공연임에도 관객이 많지 않을 때가 있다. 독자들에게 감히 부탁드리자면 프룻의 페이스북 계정을 참고해 공연을 보러 와주십사 하는 거다. 좋은 관객과 좋은 뮤지션이 만나야 비로소 멋진 공연이 된다.

서울에서 10년 넘는 세월 동안 명성을 얻어온 라이브 클럽의 대표로서, 그간 갖게 된 일종의 사명감이 있을까? 그런 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음악 듣는 거 좋아해서 평소 마시던 술값으로 월세 내고 한 3년 재미있게 놀면 되겠지 뭐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테리어랍시고 그냥 집에서 쓰던 오디오랑 CD, 레코드를 가져다 놓고 포스터 몇 장 붙인 게 고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시작했던 친구들은 한두 명씩 또 다른 재미를 찾아 떠나고, 어쩌다 보니 혼자 여기까지 오게 됐다. 더 재미있는 뭔가가 생긴다면 떠나겠지만, 아직은 여전히 음악 듣고 친구들 만나는 게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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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2018.10.12 20:00 <스바라시끄떼 나이스쵸이스 vol.25> 키세루

고엄마 스태프

키세루라는 뮤지션을 소개한다면? 쓰지무라 다케후미, 쓰지무라 도모하루 두 사람이 결성한 형제 밴드다. 카세트, MTR, 리듬박스, 샘플러, 톱 같은 장치를 활용해 특유의 부유감 있는, 판타지 같은 사운드를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활동하는 뮤지션 중 가장 좋아하는, 다음 작품이 가장 기대되는 아티스트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공중캠프는 일본 밴드 ‘피시만즈’의 팬들이 만든 PC통신 동호회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각각의 세계를 가진 아티스트를 비슷한 측면으로 엮으려는 시도가 섣부르긴 하겠으나, 개인적으로 키세루의 음악에서 피시만즈와 동질감을 느꼈다. 맞다. 평론가 노지 유코가 피시만즈 컨트리뷰터 앨범에 대해 이런 평을 쓴 적이 있다. “너무나 아름답고 부드럽고 쓸쓸한 멜로디와 언어. 에코의 울림이 1mm만 달라져도 무너져 내리는 기적의 밸런스로 구축된 완벽한 사운드 월드.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우주. 게다가 100명이 있으면 100종류가 존재하는 신기한 우주. 그들의 음악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기 마음속에 피시만즈 우주를 갖고 있을 것이다.” 키세루, 보노보, 폴라리스… 공중캠프가 지금껏 초대했던 아티스트는 비슷한 종류의 사운드와 우주를 갖고 있다.

‘관객’ 대신 ‘참여자’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관객’이라는 표현에는 수동성,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참여자’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여타 라이브 클럽과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듯하다. 한 참여자가 관객이 너무 시끄러워 공연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고 컴플레인한 적이 있다. 웹진에 그에 대한 답변을 썼는데, 요약하면 공중캠프의 공연 컨텐츠인 ‘SNC’는 ‘페스티벌’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누구에게도 공연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이 대목이 공중캠프를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서비스 정신 만땅으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스태프, 좋아하는 밴드가 눈앞에서 공연을 하는데 영혼 없이 일만 하는 스태프는 ‘공중캠프 스태프’가 될 수 없다. 자아도취와 허세에 절어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 공간과 스태프에 무례하고 ‘관객’을 머릿수로 세는 아티스트는 캠프의 무대에 설 수 없다. 스스로를 왕이라고 생각하는 ‘손님’, 돈만 내면 그런 권리가 자동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관객’은 캠프의 친구가 될 수 없다. 그 어느 곳보다 돈과 사람이 부족한 곳이지만, 그런 돈과 사람은 흔쾌히 사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인 듯도 하다. PC통신 동호회로 멤버들이 공동 출자로 설립했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18년이 흐르는 동안 출발점에서 얼마나 멀어졌을까? 동일하다. 한 달에 한 번 스태프 회의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며, 급하게 진행해야 하는 안건도 임시 회의를 소집하거나 단톡방에서 가능한 한 모든 스태프의 의견을 수렴하려 한다. 줄곧 ‘Bottom Up’이 아닌 ‘Bottom Around’를, ‘언젠가 뜨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아래서 둥글게’를 추구하며, 꼭짓점 없이 원형적이고 수평적인 시스템을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에디터 오성윤

포토그래퍼 송형근

출처 루엘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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