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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CITY, ROAD, LAND

이처럼 황홀한 여행 사진도 있다는 걸 이들을 통해 배운다. 패션 사진작가의 눈을 빌려 도시를 여행하는 루이 비통의 트래블 포토그래피 컬렉션 <Fashion Eye>가 다섯 권의 신간을 내놓았다. 폴 루스토의 <제네바>, 할리 위어의 <이란>, 시노야마 키신의 <실크 로드>, 쿠엔틴 드 브리에의 <발리>,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크레토 디 부리>. 세 작가의 속 깊은 인터뷰와 두 작가에 대한 가슴 벅찬 에세이를 지면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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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루스토 × 제네바

폴 루스토(Paul Rousteau)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사진에 반기를 드는 사진가다. 과다한 노출과 특유의 흐릿함 탓에 장난스러운 실험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는 만화경 같기도, 빛바랜 컬러사진 같기도 하다. 1985년 여름, 프랑스에서 태어난 루스토는 슈타이너-발도르프(Steiner-Waldorf) 학교에서 대안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시절의 경험으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보고 느끼는 일의 중요성을, 요컨대 평생 그를 따라다닐 감수성을 얻었다. 과도하게 낙천적인 그의 비주얼 언어는 일출과 일몰, 과일과 꽃, 푸른 초원, 바다 수영, 헐벗은 사람들, 가벼운 춤사위, 아이들의 웃음 같은, 우리를 웃게 만드는 클리셰들로 가득하다. 그의 시각은 순진무구하지만 이는 의도적인 것이다. 그는 모든 사소한 경험을 자신의 시그너처인 컬러 필터 앞에 가져다 놓는다. 이 때문에 루스토의 세상에서는 삶의 모든 요소가 밝게 빛난다.

스스로를 ‘한량 예술가’라고 부르는데, 어떤 의미인가?

우선 나는 나 자신을 한량 예술가라고 말하길 정말 좋아한다. 내 이미지들이 단번에 쉽게 완성된 것처럼 보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가할 여유 따위는 거의 없지만! 나는 사진을 ‘현실의 기록’이라는 의무에서 해방시키고, 사진이 보여주지 않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현실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가장 영감을 많이 받는 분야는 그림이다. 특히 현실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화가들을 좋아한다. 피에르 보나르, 조토, 에밀 놀데, 프라 안젤리코, 데이비드 호크니, 피카소, 제롬 보슈 같은 사람들.      

당신은 촬영 후 이미지를 수정한다. 이런 이미지 연출 기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림과 사진의 중간에 있는 기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이미지를 인화하고, 수정 후 다시 인화한다. 오랜 실험을 거친 끝에 찾아낸 과정이다. 회화와 사진의 양면성을 지닌 이런 기법은 관객이 이미지를 보고 스스로 질문하도록 유도하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제네바에 대한 첫인상은 후에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18년 전, 15세 때 처음으로 제네바를 방문했다. 여름방학 기간에 왔다가 제네바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내 친구와 만났고,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10년 후 스위스에서 사진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학자금을 벌기 위해 다시 제네바로 갔다. 거기서 바텐더, 영업사원, 배달원으로 일했다. 2010년 당시 제네바에서는 과거 반문화를 대표하던 불법 건물들이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일부 제네바인들은 과거 스위스 도시들을 지배했던 대안 라이프스타일을 그리워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를 원했고, 결국 그렇게 됐다.

한 번도 제네바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제네바의 특징을 설명한다면?

내 기억 속 제네바 우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소는 호수다. 그 밖에 물기둥 분수, 베이지색 벽돌 건물, 론강, 산, 화가 페르디낭 호들레르(Ferdinand Hodler)의 풍경화가 있다. 제네바가 여성이라면, 나이 들고 부유하고 교양 있고 세상에 열린 자세를 갖고 있는 동시에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마치 펠릭스 발로통(Felix Vallotton)의 그림 속 여성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웠나?

작업을 요청받고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는 목가적이고 이상적인 스위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체로 수영을 즐기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호숫가에서 플루트를 부는 나체의 여인을 그린 마티스의 <삶의 기쁨>과 에리크 로메르의 <클레르의 무릎>, 알랭 기로디의 <호수의 이방인>, 장 베케르의 <킬링 오브 썸머> 같은 여름 영화들 말이다. 또 나는 물기둥 분수 위로 펼쳐지는 빛의 차이를 모네의 <건초 더미>와 비슷한 방식으로 관찰하고 싶었다. 분수는 제네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조각상을 서로 다른 햇빛 아래서 촬영하기도 했다. 이런 사색적이고 고독한 날들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종종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다. 오랜 산책 끝에 나는 이방인이 제네바에 흡수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외로움 때문인지 나는 거리 곳곳에 놓인 금속 재질의 차가운 여신상에서 뜻밖의 따스함을 느꼈다. 이방인을 맞이하는 육감적이고 풍만한 여신상이 예상 밖의 영감을 가져다준 것이다.

제네바에서 촬영한 사진들 중 각별한 사진이 있다면?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수영장 너머 일몰을 담은 사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미지다. 평화로운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UN 지구에서 촬영했는데 약간의 착시 효과를 담고 있다. 중간에 호수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실 수영장을 둘러싼 흰색 벽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이 그리 시적인 설명은 아닌 듯하다.(웃음) 
다미앵 풀랭(Damien Pou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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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드 브리에 × 발리

스케이트보드와 사진은 늘 함께였다. 실제로 아리 마르코폴로스, 에드 템플턴 등 오늘날 존경받는 사진가 중 상당수가 전문 스케이트보더 출신이다. 열정적인 아마추어 보더인 래리 클락과 라이언 맥긴리도 마찬가지다. 부상으로 전문 스케이트보더의 삶을 포기하고 30세에 본격적으로 사진에 뛰어든 쿠엔틴 드 브리에(Quentin de Briey) 역시 이 분야의 계보를 잇는다.  1976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그는 동료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발견했다.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이나 유명 사진가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패션지 대신 <트랜스월드 스케이트보딩> 같은 스케이트보드 잡지를 즐겨 봤고, 펑크와 힙합에 빠져 살았다. 특히 비스티 보이즈, 런-DMC 같은 그룹을 찍은 글렌 E. 프리드먼의 사진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가 사전 교육 없이 사진계에 뛰어들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드 브리에는 결코 이미지를 보정하는 법이 없다. “저는 오직 실버 필름으로만 작업해요! 오늘날의 디지털을 매우 싫어하고, 좋아해본 적도 없죠. 디지털 사진은 제게 전혀 말을 걸지 않아요.” 따라서 그는 이미지의 물성에 대단히 주의를 기울이고 인화에도 각별히 공을 들인다. 발리에서 찍은 원본 사진을 다시 관광엽서처럼 재촬영한 사진은 그의 이런 세심함을 잘 보여준다. “발리는 제게 하와이와 비슷해요. 오랫동안 꿈에 그려왔다는 점에서요. 물론 솔직히 말해서 발리가 특출하게 포토제닉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건축이나 예술 작품에서 드러나는 힌두교 요소들도 이렇다 할 미적 자극을 주진 못했고요. 하지만 여전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곳임은 분명해요!”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이 줄줄이 놓인 거리, 우붓 산마을 끝에 자리한 원숭이 보호구역, 바다 가운데 불쑥 솟은 타나롯 사원, 서퍼로 가득한 쿠타 해변, 발리섬 최대 화산인 아궁산 등 모든 이례적인 장소에는 관광객이 넘쳐났다. “섬 남부는 꽤 훼손됐죠. 그런데도 아직 전통적인 장소가 많아요. 발리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늘 어딘가에서 영혼의 위안을 추구해왔거든요. 그러니 모든 사람이 가지 말라고 하는 바로 그런 곳에 가야 해요!” 예컨대 오지에서 길을 잃고, 렌터카를 빌려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고, 35도가 넘는 기온에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모르는 길 끝에서 낯선 이의 결혼식 피로연을 목격하고, 저도 모르게 사람들의 환한 미소 속에 둘러싸이는 식으로. 그래서 쿠엔틴 드 브리에의 사진은 뜻밖의 만남으로 가득하다. 닭싸움하는 사람, 오토바이 앞에서 자신의 애마를 과시하는 사람, 야외에서 부끄럼 없이 목욕하는 사람, 인적 드문 길에서 벼를 말리는 농부…. “우연이 길을 인도해요. 우리 일상에서도 그렇고요.” 
패트릭 레미(Patrick R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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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야마 기신 × 실크 로드

1960년대 후반 시노야마 기신(Kishin Shinoyama)이 촬영한 누드 이미지는 그의 인상적이고 풍성한 커리어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향인 일본 밖에서 그는 주로 누드 사진가로 알려져 있는데 덕분에 그의 나머지 작품이 오히려 평가절하 되는 경우도 많다. 1940년 도쿄에서 태어난 시노야마 기신은 니혼 예술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중 광고 대행사에 입사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다이도 모리야마처럼 일본 현대 사진에서 명성을 떨친 작가들과 달리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작업한 탓에 그의 사진은 종종 ‘상업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이따금 그를 일본 예술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위치하게 만든다.
이 ‘미친’ 프로젝트를 어떻게 처음 떠올렸나.

먼저 당시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 출판계는 예술의 부흥과 맞물려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실크 로드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생겨났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여행이 더 수월해지기도 했다. NHK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실크 로드에 대한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출판사들 역시 동일한 주제의 책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출판인 시와치 쇼이치로(Sho –ichiro – Shiwachi)가 나를 실크 로드로 보내 여덟 권의 사진집 시리즈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그가 원한 것은 학문적이거나 역사적인 책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실크 로드를 매력적인 레이아웃으로, 즉 커다란 판형의 사진집 시리즈로 발간하길 원했다.

여덟 권은 한 번에 발행되었나.

아니다. 1981년 5월에서 1982년 7월 사이에 두 달에 한 권씩 차례로 발간됐다. 중국(3권),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란(5권), 이집트(7권), 중국(4권), 시리아·요르단·이라크(6권), 터키·그리스·이탈리아·바티칸(8권), 한국(2권), 일본(1권). 이후 티베트, 아라비아 반도 등 실크 로드를 둘러싼 지역을 다룬 동일한 크기의 책 두 권을 추가로 발간했다. 안타깝게도 북한 입국 허가는 받지 못했다.

여행하는 동안 촬영팀을 대동했는지 궁금하다.

나와 어시스턴트, 시와치 쇼이치로가 한 팀이었고 현지에서는 가이드와 운전기사, 현지인이 동행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적은 인원으로 여행하려고 했다. 그래야 붐비는 여행지나 유적지를 방문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관광지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나.

알레포 같은 유적지는 최상의 빛이 내리쬐는 아침 일찍 작업했다. 관광엽서 같은 사진을 찍길 원했다면 아마 정오쯤 촬영했을 거다. 시장이나 유명 관광지는 일부러 혼잡한 시간에 돌아다녔다. 군중 속에 섞이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으니까.

시리즈의 시작과 끝이 도다이지 사원과 바티칸이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의 종교는 실크 로드의 무역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측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고민 끝에 동양의 도다이지 사원에서 시작해 서양의 바티칸으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주제가 실크 로드였기에 이런 재미있는 구성이 가능했다.

언젠가부터 해외 작업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이제는 해외 촬영에 큰 관심이 없다. 실크 로드를 비롯해 이미 많은 장소를 돌아다녔으니까. 현재 나를 매혹하는 건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쿄다. 벌써 6년째 찍고 있는데, 최근 도쿄는 진정한 격변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나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패트릭 레미(Patrick Remy) 

 

 


에디터 강보라

출처 루엘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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