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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의자들

100일 동안 100가지 방법으로 100개의 의자를 만든 디자이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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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리얼리티 쇼가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도전자들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 놓일 때다. 디자이너가 철물점에 있는 재료만으로 당장 런웨이에 올려도 손색없는 드레스를 완성할 때, 요리사가 3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린 끝에 그럴 듯한 5코스 요리를 내놓을 때, 우리는 궁지에 몰린 인간의 잠재 능력을 보며 묘한 희열을 느낀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 마르티노 감페르(Martino Gamper)는 자신이 만든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의 유일한 도전자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제한된 상황에 뛰어든 것이다. 미션은 간단했다. 100일 동안, 100가지 방법으로, 100개의 의자를 리폼할 것. 당시 그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지도 교수이자,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론 아라드의 수제자로 이미 명성이 높은 터였다. 요컨대 100개의 결과물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했다. 학부생이 부랴부랴 만든 졸업 작품처럼 보여서는 곤란했다. 

감페르는 2년 동안 런던 거리에 버려지거나 친구들로부터 기증받은 의자를 착실히 모아 대망의 ‘100, 100, 100’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100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기존의 의자를 해체하고 재조립해 새로운 의자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의자 제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작업이었다. 나무를 자르거나 못을 두들기기보다는 엉뚱한 오브제를 붙이거나 두 개 이상의 의자를 엮는 일이 더 많았다. 버려진 물건으로 100점의 가구를 만드는 일은 재활용(reuse)을 넘어 일상의 물건을 예술 작품으로 격상시키는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 개념으로 나아갔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자유’가 아닌 ‘제한’에 대한 실험이었다. ‘하루에 한 개’라는 시간적 제약은 디자이너로 하여금 아이디어가 퐁퐁 솟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는 파손된 플라스틱 의자를 철제 의자에 끼웠고, 나무 의자를 뒤집어 다른 나무 의자의 다리로 썼다. 서로 다른 의자를 이리저리 조합하다 보면 등받이가 다리로, 팔걸이가 좌판으로 변하는 일도 흔했다. 옷걸이나 자전거 안장 같은 엉뚱한 물건을 끌어들여 스툴을 만드는가 하면, 아르네 야콥센의 앤트 체어나 미하일 토네트의 토네트 체어 같은 거장의 작품을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하기도 했다(개중에는 스승 론 아라드가 기부한 의자도 있었다). 마침내 완성된 100개의 의자는 2006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의자와의 대면 Confronting the Chair>이라는 제목의 전시로 처음 공개되었으며 이후 서펜타인 갤러리, 밀라노 트리엔날레, 샌프란시스코 YBCA 등을 거쳐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전시되고 있다. 

마르티노 감페르의 위대한 도전은 결국 ‘의자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을 향한 여정이었다. 100일간의 프로젝트를 마친 그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완벽한 의자는 없다(There’s No Perfect Chair).”
 

 

Photo: Abäke & Martino Gamper / Courtsey of Nilufar Gallery


에디터 강보라

출처 루엘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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