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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옥에 깃들다

아예 한옥을 설계 공간으로 쓰면서 한옥을 짓는 건축가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한옥의 참멋,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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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계동길 59-9에 있는 김장권 소장의 북촌에이치알씨 사무실은 지인의 의뢰를 받아 김장권 소장이 직접 지었던 한옥이다.
 

김장권 | 북촌에이치알씨

한옥을 사무 공간으로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 공간을 내가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12년 전, 지인의 의뢰를 받아 예산에 맞춰 뚝딱 지었는데 우연히 내가 쓰게 됐다. 그런 이유로 이 사무실을 언급할 때마다 ‘집을 지을 때는 정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곁들인다. 남을 위해 지은 집이 내 집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하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한옥을 100채 지었을 때 내가 처음 지은 집이 여전히 서 있는 걸 알았고 150채쯤 지었을 때는 집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벌 받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지금까지 몇 채 정도 지은 건가? 정확하진 않지만 230~240채 지었더라. 처음엔 영혼을 팔아서라도 일감을 구했는데 어느 순간 일이 무서워지더라. 책임감 때문에. 그리고 내가 지은 집의 대부분이 이 동네에 모여 있다 보니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도 이사를 하지 않고 12년이나 머물렀다는 건 크게 문제가 없다는 얘기 아닐까? 마음에 안 드는 게 왜 없겠나. 하지만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었나를 떠나 한옥 자체가 갖고 있는 공간, 다시 말해 마당이라든지 대청은 다른 건축양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분이고 또 이런 정적인 분위기는 한옥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소리의 여백이라고 하는 조용함도 일반 사무실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다.

한옥 사무실만의 장점이 또 있다면? 야근을 해도 머리가 덜 아프다. 일반 사무실도 써봤는데 특히 겨울에 공조기를 돌려 환기를 하면 바로 머리가 아팠다. 여긴 훨씬 편안하다. 몸이 바로 알더라.

한옥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어디인가? 처음엔 얼마를 썼을까? 저 처마는 어떻게 만든 거지? 하며 형태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웬만큼 고참이 되다 보니 돈을 얼마나 썼고 얼마나 좋은 재료로 호화롭게 마감했느냐보다는 그 지형과 터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얹혔고 지혜롭게 쓰고 있나에 더 관심이 가더라. 형태가 아닌 행태, 즉 그 한옥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살핀다. 예컨대 부부가 사는 집이라면 부부 싸움했을 때 피할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열림과 개방뿐만 아니라 가림과 닫힘도 얼마나 잘 돼 있는지 보는 거다.

사무실 공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첫 번째는 대청이다. 한옥이 갖고 있는 유연함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모기장 치고 자면 방이 되고 밥을 먹으면 식당이 된다. 두 번째는 마당이다. 특히 대문 틈 사이로 보이는 마당은 한옥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열림과 닫힘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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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16길 9에 있는 김원천 소장의 참우리건축사사무소는 한옥 두 채를 터서 사무실과 회의실을 꾸몄다.
 

김원천 | 참우리건축사사무소 한옥연구소
한옥을 사무 공간으로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15년 전에 옆 건물을 사무실로 썼었다. 그때 이 한옥이 매물로 나왔는데 당시엔 사무실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 년 뒤 다시 매물로 나온 걸 보고 사무실로 쓰게 됐다. 내가 제일 잘 알고, 다룰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오피스텔이나 현대식 사무실을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한옥만 한 게 없었다. 불편한 건 없냐고? 아니, 한옥은 옛날 집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좀 다르다. 아파트가 변하는 것처럼 한옥도 시대에 맞게 적응하며 변한다.

그렇다면 한옥을 리노베이션할 때 거의 모든 걸 현대식으로 뜯어고치나? 경우에 따라 다르다. 건축주가 원하는 게 전부 다르니까. 하지만 한옥을 일부 수정하거나 부숴야 할 경우라도 거기서 나온 폐기물을 거의 버리지 않는다. 저기 보이는 담벼락도 바로 그런 경우다. 원래는 사무실로 쓰던 마루의 구들장을 받치던 돌이다. 마루를 허물면서 나온 돌로 집 안 마당에 담을 쌓았다. 과거 한옥에 쓰인 재료들은 이젠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창호지 한 장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한옥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어디인가? 건축가의 의도. 모든 건축물이 그렇지만 한옥은 특히 만든 사람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나무 기둥 하나를 보더라도 깎은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재미있는 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한문이나 어떤 기호를 이용해 만든 이의 흔적을 남겨둔 집들이 꽤 된다는 점이다. 나 역시 목수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안다. 땀 흘려 열심히 만든 집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 말이다.

한옥만의 매력이 있다면? 융통성. 한옥은 양옥이나 일반 아파트와 달리 공간 전용이 매우 쉽다. 이를테면 대청마루라고 해서 꼭 마루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거기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다. 손님이 오면 얘기를 나누는 미팅 룸이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옥은 확장도 용이하다. 이 사무실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두 개의 집이 연결된 구조다. ‘ㅁ’ 자 모양의 집을 합해 한 채는 사무실로 또 다른 한 채는 게스트하우스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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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5에 있는 이용재 소장의 이용재 아키텍츠는 뒤편에 있는 또 다른 한옥의 리노베이션을 할 때 현장사무실로 사용하던 작은 한옥이었다.
 

이용재 | 이용재 아키텍츠

한옥을 사무 공간으로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7년 전, 이 사무실 뒤쪽에 있는 한옥의 리노베이션을 맡았다. 당시 현장 사무실로 쓰던 공간이 바로 이 자리다. 그때는 광화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옮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누하동이 재개발 결정이 나면서 아파트가 올라간다는 거였다. 하지만 재개발 계획이 전면 취소되면서 졸지에 이 공간이 붕 뜨게 됐다. 건축주와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 일부를 사무실로 쓰기로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한옥을 사무실로 써본 소감은? 힘들다. 춥고 더워서. 하지만 장점이 많다. 요즘 집 안에서 어떻게 이런 나무 구조를 느낄 수 있겠나. 또 천장에 뚫린 창으로 시시각각 들어오는 햇빛을 어디서 경험해보겠나. 특히 봄·가을에는 지인들과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곤 하는데 그럴 때 바람이 지나가다 저 창을 통해 안으로 쓱 들어올 때가 있다. 정말 황홀하다. 사실 1~2년 쓰다 떠날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있는 걸 보면 분명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가구도 하나씩 다 짠 건가? 전통 한옥은 공간 자체가 작다. 요즘 나오는 기성 가구는 아예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문 제작하거나 직접 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 이 방도 책장과 책상을 모두 짜서 꾸민 곳이다. 원래는 창고처럼 쓰던 곳인데 사무실에서 건축주와 프라이빗한 얘기를 주고받거나 개인 작업할 때 요긴하게 쓰고 있다. 공간에 마침맞게 가구를 짜 다 집어넣다 보니 분위기도 좋다. 물론 이사 갈 때 다 두고 가야 한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공간을 떠날 생각을 하는 건가? 이곳을 떠날 순 없을 것 같다. 주변에 한옥이 많아 일감 인프라가 좋은 건 둘째 문제다. 이 동네만의 정서와 문화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한옥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어디인가? 마당의 볼륨을 본다. 제곱미터가 아니라 세제곱미터를 말하는 거다. 단순하게 몇 평이 아니라 높이와 면적을 종합해 전체 분위기를 보는 거다. 이를테면 옷에도 헐렁한 게 있고 딱 맞는 게 있지 않은가. 한옥 마당에도 그런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이런 편안한 느낌은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다. 방도 마찬가지다. 시간, 빛 이런 주변 환경도 영향을 미치거든. 건축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조금씩 더 알게 되는 부분이다.

 


에디터 이재림

포토그래퍼 이종훈

출처 루엘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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