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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칼의 노래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요리사에게 듣는, 나의 칼 그리고 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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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훈

강남구 신사동 아메리칸 그릴 ‘에스테번’ 총괄 셰프

 

이 칼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뉴욕 일레븐 매디슨 파크(EMP) 레스토랑에서 3년간 수셰프로 일하고 떠나기로 결정한 뒤 함께 근무한 동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선물해준 칼이다. 퇴사 날짜인 2013년 9월 17일과 EMP의 로고를 셰프가 직접 새겨줬다. 포르쉐가 디자인한 제품이라는데 손잡이와 날이 한 덩이라는 특징이 있다. 처음에는 이런 구조 때문에 불편할 줄 알았는데 손에 익고 난 뒤에는 다른 칼을 쓰기 힘들어졌다. EMP 때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가게가 오픈 키친이다 보니 바에 앉은 손님들에게는 요리하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내가 쓰는 칼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십중팔구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다. 양식은 상대적으로 칼에 대한 애착이 덜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점점 칼만큼은 내 것을 써야 한다는 인식이 양식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자리 잡고 있다. 일식에서 강조하는, 칼에 요리사의 혼을 담는다는 얘기도 점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에스테번 키친에 보면 칼이 여러 자루 있는데 모두 주인이 있는 칼이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니다. 전부 하나같이 도마 위에 올려져 있지 않은가. 보통 칼은 자기 돈으로 직접 마련한다. 어느 요리나 마찬가지겠지만 셰프가 쓰는 칼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주방에 있는 스태프들이 항상 관심을 갖고 본다. 만져볼 수는 없으니까 뭘 쓰는지 눈 여겨봤다가 인터넷에서 검색해 찾아보고 돈 모아서 구입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산 칼이 수십 자루다. 칼에는 사용하는 사람의 스타일이 분명히 드러난다. 칼날을 가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누구는 각 면별로 7:3으로 간다고 하면 또 누구는 9:1로 갈기도 한다. 10인 10색, 전부 다르다. 그런 까닭에 관리는 철저히 개인이 해야 한다. 아메리칸 그릴은 고기를 썰 일이 많기 때문에 한 서비스 타임을 위해 칼을 두 자루씩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손님에게 서빙을 하다 칼날이 무뎌지면 곧장 바꿔 써야 하니까. 말 그대로, 날카롭게 잘려나가던 고기의 단면을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서비스하기 위한 프로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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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훈

강남구 도산대로 ‘스시 선수’ 오너 셰프

 

갖고 있는 칼 중에 소중하지 않은 건 없다. 처음 내 칼을 갖게 된 건 25년 전으로 당시 나는 신라호텔 아리아께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막내였다. 아리아께에는 일본에서 온 요리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스시 회사에서 온 다카시마 상이 있었다. 한국 생활을 하며 겪던 어려움을 몇 가지 도와줬는데 그게 고맙다고 일본에 갔다 돌아올 때 내 이름을 새긴 두 자루의 칼을 선물해줬다. 하나는 복사시미칼, 또 다른 하나는 채소를 다듬는 칼이었다. 나는 업장이 바뀌면 칼도 바꿨다. 각오를 새로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신라호텔에 있을 때 쓰던 칼, ‘스시초희’ 시절 쓰던 칼, 지금 사용하는 칼이 전부 다르다. 스시 선수를 운영한 지 벌써 6년째인데, 지난달에는 건물주와 5년 재계약을 한 뒤 각오를 새로 다지기 위해 칼 한 자루를 맞췄다. 일본에 이케다라는 칼 장인이 있는데 그의 몇 개 남지 않은 유작을 운 좋게 구해 지금 제작 중이다. 칼을 고를 때는 정말 심사숙고해야 한다. 내 경우 세 번을 가서 보고 고른다. 칼 가게에 가면 수천 개의 칼이 있다. 그중에 내가 필요하고 원하는 사양을 말해 1차로 추린다. 그런 다음 가장 마음에 드는 자루에 손톱 자국을 내는 등 나만 알 수 있는 표시를 해둔다. 다음에 갔을 때 그 칼이 있으면 속으로 ‘그래 다음에도 있으면 데리고 오겠다’ 생각하고 한 번 더 흔적을 남긴다. 세 번 째 갔을 때도 있으면 그땐 정말 인연이구나 하고 가져온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칼 한 자루를 구하는 데 엄청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식에서 칼은 요리사의 분신과도 같다. 적어도 레스토랑에서 손님 앞에서만큼은 요리사에 버금갈 만큼 소중하다. 일례로 일식은 초가 들어갔냐 들어가지 않았냐에 따라 사용하는 칼이 엄격히 나눠진다. 초절임 요리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철이라도 식초는 녹이 슬게 마련이라 합금 칼을 써야 한다. 일식에서는 칼의 끝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을 다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절삭면이 깔끔하게 나온다. 검도 유단자들이 볏짚베기 하는 것 봐라. 내려치는 게 아니라 ‘슉’하고 칼의 전체를 이용하지 않나. 이것도 마찬가지다. 짧게 칼의 일부분만 이용해 썰면 생선만 너덜너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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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용

(종로구 소격동 ‘큰기와집’ 오너 셰프)

 

쿵, 아드득. 칼자루로 오이를 으깨는 소리다. 칼이 내는 소리는 뭔가 잘리는 소리만 날 줄 알았나? 이렇게 둔탁한 소리도 낼 수 있다. 사실 전통 한식에서는 칼 쓸 일이 많지 않다. 자연마저도 빌려 쓰는 것이라는 우리의 오랜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고스란해서 그렇다.  칼 없이 어떻게 요리하냐고? 옛날 우리네 어머니가 집에 손님이 왔을 때 밥 차리던 모습을 설명하는 걸로 답을 대신할 수 있다. 잘 들어봐라. 쌀 씻어서 밥 안치고 쌀뜨물은 된장 좀 주물러서 호박 좀 넣은 뒤 된장찌개를 끓인다. 밭에 가서 호박잎, 꽈리고추 몇 개, 가지 하나 따놨다가 밥이 어느 정도 익어서 뜸들일 때 밥 위에다 싹 올린다. 한국의 조미료는 단맛이 나는 밥물이다. 수증기로 데치는 거다. 그런 뒤 간고등어 한 마리 구워서 내면 끝. 여기 어디에 칼이 필요한가. 한식은 음식에 쓰는 재료도 되도록이면 원래 모습과 성질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죽순을 손으로 죽죽 찢어서 무친다든가, 열무를 자르지 않고 손으로 버무린다든가, 오이소박이를 만들 때도 칼 손잡이나 방망이로 으깨서 양념을 하는 걸 생각해보라. 이렇듯 재료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게 한식만의 멋이다. 이런 사고방식 덕택에 한식에서는 칼을 도구로만 쓰지 절대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마음가짐에 따라 내가 칼을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칼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그런 면을 볼 때 한식에서 진짜 칼은 손이 아닐까? 가끔 칼인지 손인지 모를 때가 있을 정도다. 물론 내게도 오래된 칼 한 자루가 있다. 사용한 지 30년 됐는데 어머니께 받았다. 그동안 계속 갈아서 쓰느라 길이도 짧아지고 폭도 줄었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갈아서 사용한다. 처음 받았을 때 어머니께서는 칼끝을 꺾어주셨다. 이유가 뭐냐고? 사용할 때마다 꺾어진 끝을 보고 마음을 다잡으라는 뜻이다. 날에 새겨진 한자는 전남, 한글은 부흥이고 손잡이에 지워진 글자는 부흥식도다. 원래 남원식도는 불에 담금질을 수십 차례 하고 직접 두드려 날을 세워 튼튼하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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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육성

마포구 서교동 ‘진진’ 오너 셰프


중식은 거의 모든 음식을 이 넓적한 중식도 하나로 요리할 수 있다. 칼날만 써서 썰고 자르기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호박을 채 썰 때 순간적으로 칼의 면에 ‘차락’하고 실어 접시에 옮길 수 있고, 면으로 재료를 패서 찧을 수도 있고 칼 등을 이용해 뭔가를 부술 수도 있다. 가령 마늘 같은 식재료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내리치는 건 멋 때문에 패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하면 곱게 빻거나 가는 것과 달리 덩어리가 불규칙해져 식감도 더 좋고 발산하는 향도 풍부해진다. 과거에는 쇠의 품질이나 가공 기술이 많이 떨어져 칼자루와 날이 부러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면 버릴 수는 없고 용접해서 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요즘은 훨씬 단단해졌지만 그래도 칼을 아끼는 마음에 손바닥으로 칼의 윗면을 같이 짓누르면서 찧으려고 노력한다. 그마저도 바쁘면 파리 잡듯 내리칠 수밖에 없지만. 물론 억센 재료들, 예컨대 닭이나 돼지갈비를 손질할 때는 조각칼이나 뼈칼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마저도 요령이 생기면 중식도만으로도 가능하다. 편법이긴 하지만 칼등을 이용해 뼈를 부러뜨린 뒤 칼을 집어넣어 살과 뼈를 발라내면 되니까. 모두 칼이 넓적하고 무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류 호텔 중식당에서는 칼날을 가는 게 일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장사를 다 하는 특성상 하루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씩도 날을 갈았다. 만에 하나 주방장 마음에 들지 않게 갈려 있으면 칼이 날아다니기까지 했다. 칼날 상태는 손으로 만졌을 때 가장 잘 알 수 있지만 쉽게 확인하는 법은 날을 정면에서 보는 거다. 잘 갈렸으면 까맣게 보인다. 그리고 이빨이 나간 부분은 하얗게 점이 생긴다. 내가 처음 가졌던 칼은 당시 다니던 호텔 업장에서 날이 거의 닳도록 쓴 막칼이었다. 그마저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모른다. 혹시나 다른 사람이 쓸까 봐 감춰두기까지 했다. 이 칼은 내가 산 것은 아니다. 일본 제조사가 국내 중식 요리사 세 명에게 선물로 준 건데 마음에 꼭 들어서 애용한다. 칼에 왜 이름 하나 새기지 않았냐고? 그런 건 보통 상술이다. 제조사에서 이름을 새긴 뒤 써달라고 갖고 오는 경우가 많거든.

 

 


에디터 이재림

포토그래퍼 신규식

출처 루엘 201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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