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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HICLE

라이더스

불볕더위가 찾아와도, 당장 1시간 후의 날씨를 가늠할 수 없는 장마가 찾아와도, 여전히 자동차보다 바이크가 좋다는 남자들. 네 명의 라이더에게 그 애착의 정체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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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DA _STEED 600

주영준 (바 틸트 마스터)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계기는? 폭주족들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서울 변두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밤의 도로는 항상 요란했고, 가끔씩 부서진 바이크와 부서진 사람 파편이 널려 있기도 했다. 나름 모범생으로 살던 그 시절엔 바이크에 별 관심이 없었다. 대체 왜 저렇게들 목숨 걸고 오토바이를 타나 의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마다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왜 이러지, 재밌나, 한번 타볼까, 일단은 면허라도 따보자, 뭐 그렇게 시작된 것 같다. 이 바이크의 매력을 설명해준다면? 국내외 라이더들이 극찬하듯, 스티드600은 무난하고 착하고 단단하고 안전하다. 과장이 아니라 자전거나 스쿠터보다도 편하다. 게다가 내 바이크는 1992년식이다. 25년 전 만들어진 바이크가 멀쩡하게 움직인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내가 쓰는 물건 중 만들어진 지 가장 오래된 물건인데, 가장 쌩쌩한 물건이다. 만들어진 지 2년밖에 안 된 휴대폰은 배터리가 오락가락하는 현상을 보인 지 꽤 되었고, 4년쯤 된 노트북은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인데. 커스텀한 부분이 있다면? 톱 박스와 사이드 박스를 달았는데, 안 예뻐서 얼마 안 지나 떼어버렸다. 그래서 짐을 많이 운반할 일이 있을 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차를 가진 친구를 부르고, 자잘한 짐은 카트 로프로 대충 둘둘 묶어 다닌다. 어차피 바이크는 ‘감성’으로 타는 거 아닌가. 함께한 가장 즐거운 추억은 무엇인가? 첫 실전 도로 주행. 바이크를 산 날은 친구가 운전하는 뒤에 얹혀 집까지 갔고, 그 후로 2~3일간 세워두기만 했다. 처음 몰고 나갔던 때는 하루 종일 모든 일이 꼬였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뭘 해야 화가 풀릴까 고민하다 바이크에 올라탔다. 멋지게 바이크를 타면 화가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상상처럼 멋지게 바이크를 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고 있자니 스스로 굉장히 바보 같고 우습게 느껴졌는데 이상하게 기분은 시원해졌다. 기회가 닿는다면 함께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수많은 라이더들의 로망인 전국 일주. 세계 일주 같은 걸 꿈꾸기에는 바이크도 좀 늙은 것 같고 나도 좀 늙은 것 같다. 아직 이 세계를 잘 모르는 남자들을 위해 바이크의 매력을 설명해준다면? 스로틀만 당기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건 매혹적이면서 위험한 일이다. 매혹적이며 동시에 위험한 일의 주도권이 내게 있다는 건 역시 꽤 기분 좋은 일이다. 바이크를 탈 때 당신의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글쎄. 비유할 만한 음악이나 영화는 잘 모르겠고, 여름밤에 할 수 있는 두 번째로 즐거운 일은 바이크를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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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SPA _GTS 300 70TH ANNIVERSARY

한용 (포토그래퍼)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계기는? 바이크에 대한 로망이 있지는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친한 지인의 베스파를 물려 받으면서 타기 시작했다. 이 바이크는 어떻게 구매했나? 사실 그렇게 바이크를 타기 시작하고서도 기종을 변경해가며 타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신촌 베스파 대표가 곧 70주년 한정판 모델이 입고된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그 오묘한 컬러에 빠져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이 바이크의 어떤 점에 끌렸나? 이전에 타던 것은 베스파 LX 125였는데, 아무래도 125cc여서 힘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고배기량인 것이 탐나기도 했고, 한정판 모델을 소유한다는 사실이 매혹적이기도 했다. 커스텀한 부분이 있다면? 베스파는 소유자 각자의 컬러를 입힐 수 있는,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대표적 브랜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깔끔하게 유지하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라 넘어졌을 때 스크래치를 방지하는 사이드 가드와 머플러 정도만 바꿔 달았다. 앞쪽에 달아놓은 깃발은 스위스에서 물 건너 온 녀석이고, 군데군데 붙어 있는 아주 작은 데칼들은 영국, 인도, 태국 등지에서 직접 공수해온 아이들이다. 어떨 때 가장 잘 샀다고 느끼나? 깨끗하게 세차한 뒤 빛이 번쩍번쩍 할 때. 그리고 달리는 매 순간. 특히 교통 체증 없이 원하는 장소까지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을 때. 반대로 가장 아쉬울 때는? 베스파 GTS는 그란투리스모, 즉 여행용으로 만들어진 스쿠터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만들어졌던 먼 옛날이야기고, 시트 포지션이 거의 책상 높이다 보니 장거리 라이딩을 즐기기는 힘들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장거리를 뛰고 나면 척추뼈 한 군데가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함께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무엇인가? 광고 촬영 장소를 둘러보려고 평창에 다녀온 적이 있다. 혼자서 처음 가보는 장거리 라이딩이라 기억에 남는다. 초행길이라 편도 4시간 반 정도 걸린 데다 얼어 죽을 뻔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함께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여자친구를 텐덤(앞뒤로 타는 것)해 캠핑을 다녀오고 싶다. 문제는 여자친구가 없으니… 아직은 그냥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아직 이 세계를 잘 모르는 남자들을 위해 바이크의 매력을 설명해준다면? 스로틀을 감으며 잔진동을 몸으로 느낄 때의 쾌감. 교통 체증에 자동차들이 꿈쩍도 못하고 있을 때 유유히 옆으로 빠져나가는 희열감. 새벽녘 머플러 소리를 들으며 코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실 때의 감성. 베스파 바이크의 매력으로 한정 짓는다면,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나가야 할 일이 있을 때 너무 잘 어울리는 패션 아이템이라는 점도 꼭 언급해야겠다. 바이크를 탈 때 당신의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음악에 비유하자면 데이먼 알반의 ‘Lonely Press Play’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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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WASAKI _W800

박병준 (세무사)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계기는? 바이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냥 회사가 멀어 출퇴근용으로 스쿠터를 구입한 게 시작이었다. 타다 보니 궁금한 부분도 있어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는데, 들락거리다 자연히 다른 바이크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혼다 CBR 250을 구입했다. 하지만 부모님 반대가 너무 심해 다 팔아버렸었다. 그런데 사실 취미는 그렇게 효심으로 접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얼마 못 가 또 스쿠터를 한 대 구입했고, 그때부터 기변을 굉장히 많이 했다. 아프릴리아 쉬버 750, 야마하 티맥스 530, 가와사키 닌자 ZX10R, 혼다 CBR 600, 두카티 스크램블러, 혼다 NC750…. 사실 모두 기’변’한 것도 아니다. 지금도 종류별로 한 대씩 보유하고 있다. 레플리카 한 대, 클래식 바이크 한 대, 투어러 한 대, 스크램블러 한 대, 스쿠터 한 대, 이런 식으로. 물론 부모님은 아직 내가 스쿠터만 타는 줄 알고 계시지만. 이 바이크는 어떻게 구매했나? 인터넷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엄청나게 예쁘게 커스텀된 W800을 본 거다.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다시 바이크를 구입하려는 시점에 그 블로거가 바이크를 팔고 싶다고 했다. 1년쯤 전이다. 사실 내가 바이크를 자주 바꿔서 1년 넘게 보유하고 있는 바이크는 아주 드문 축이다. 이 바이크의 매력을 설명해준다면? 가와사키 W800은 트라이엄프의 스크램블러 라는 모델을 거의 똑같이 베껴서 만든 클래식 바이크인데, 완성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내가 가진 오토바이 중 ‘대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제일 ‘간지’ 난달까. 하하하. 멀리 나가기에는 좀 불편한 기종이지만 시내에서 천천히 타기에는 훌륭하다. 물론 그런 기준으로 따지면 할리 데이비슨 같은 바이크가 더 낫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뭐랄까, 그렇게 복장과 문화가 공고한 바이크는 내 기준에서 좀 부담스럽다. W800은 가볍게 올라탈 수 있는 데 비해 고동감이나 소리도 좋고, 참 예쁘다. 아직 이 세계를 잘 모르는 남자들을 위해 바이크의 매력을 설명해준다면? 배기음을 들으며, 고동과 바람을 느끼며 달릴 때의 그 기분. 솔직히 시내를 달릴 때 쏟아지는 시선도 즐거운 요소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라이더가 있다면 거짓말인 것 같고. 남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내가 생각할 때는 스스로가 멋져 보이니까,  그 분위기에 취하는 맛인 것 같다. 함께한 가장 즐거운 추억은 무엇인가? 두무개길을 지날 때마다 매번 그렇게 좋다. 터널의 뚫린 옆면으로 한강의 풍경이 스쳐 지나는데, 꼭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바이크를 탈 때 당신의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비슷한 감흥의 음악을 꼽으라면 버벌진트의 ‘굿모닝’이 떠오른다. 바이크 디자인과 너무 안 어울리나? 하지만 정말 그렇다. W800을 탈 때마다 늘 상쾌하고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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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ATI _MULTISTRADA PIKE PEAK

황정훈 (삼성전자 제품 디자이너)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계기는? 딱히 특별한 계기는 없고, 서른 살쯤 시작했다. 2기통으로 시작해 4기통도 좀 타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토크감이나 거친 느낌이 잘 맞아서 쭉 2기통만 탔다. 결혼과 맞물려서 다 그만뒀었는데 3년쯤 전부터 다시 타고 있다. 네이키드 바이크도 타보고, 작고 경쾌한 것도 좀 타보고, 투어러나 할리 데이비슨도 타보고…. 딱 ‘이게 맞다’ 싶은 게 없이 각자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 사고팔고를 반복하며 여러 대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네 대를 갖고 있다. 이 바이크는 어떻게 구매했나? 바이크라는 취미가 참 좋다. 교외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걸 먹고. 그 좋은 걸 혼자서 한다는 것이 아내에게 항상 좀 미안하더라. 그래서 한번도 고려해본 적 없는 투어러를 구매하게 됐다. 그런데 함께 어딘가를 가본 적은 없고 늘 혼자 타며 즐기고 있다. 이번 장마가 끝나면 꼭 함께 어디든 가야지…. 이 바이크의 매력을 설명해준다면? 멀티스트라다 파익스피크는 2기통 오토바이고 160마력 정도 나오는 투어러다. 무게가 좀 나가기는 하지만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순간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경쾌하고 빠른 친구다. 저속으로 갈 때에도 차체 안정성이 훌륭하고 밸런스가 잘 맞다. 함께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무엇인가? 바이크를 타다 보면 아무래도 투어를 떠나고 싶어진다. 당일치기나 1박 2일 정도로는 몇 번 다녀오긴 했지만 멀리 다녀온 건 올해가 처음이다. 마음 맞는 동료 라이더들을 만나 3박 4일 동안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산도 타보고 비포장길도 달려보고 비도 맞아보고 해안도로도 달려봤다. 기억에 남는 게 참 많다. 기회가 닿는다면 함께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스위스 알프스산맥을 한번 가보고 싶다. 남쪽에서 북쪽으로든 그 반대로든, 한 달 이상의 장거리 투어를 해보고 싶다. 힘들지 않겠냐고? 투어라는 게 더러울 수도 있고, 더울 수도 있고, 혹한을 맞을 수도 있고, 흙탕길을 갈 수도 있고, 비를 맞을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잘 다져진 길을 밤낮 달리기만 하는 것을 ‘투어’라고 하기는 아쉽다. 아직 이 세계를 잘 모르는 남자들을 위해 바이크의 매력을 설명해준다면? 보통 이런 질문에는 딱 ‘일탈’ ‘자유’ 그런 답이 붙더라. 하지만 바이크는 스쿠터부터 엔듀러, 오프로드 바이크, 네이키드, 레이싱 바이크, 투어러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바이크의 매력은 일탈일 수도 있고, 편의일 수도 있고, 가벼운 여행일 수도 있다. 아무려나 각자가 찾아보길 권한다. 바이크를 탈 때 당신의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의 한 장면으로 비유하자면 <쇼생크 탈출>에서 탈옥에 성공한 쇼생크가 비를 맞는 순간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그 강렬한 희열.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지 않아도 좋은 느낌. 그 자유.

 

 


에디터 오성윤

포토그래퍼 신규식

출처 루엘 201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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